천리안 인물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불교의 핵심은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국인들에게 불교를 가르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지내려 온 것입니다."

영국 옥스퍼드대 불교학센터의 리처드 곰브리치(71) 교수는 3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처럼 한국을 방문한 소감을 밝히면서 "불교가 1천600여 년 전에 한국에 들어온 이후 초기의 모습을 거의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는 게 매우 놀랍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국가라 해도 신자의 대부분은 1년에 한번 교회나 성당에 갈 뿐"이라면서 "부처님오신날에만 절을 찾아가도 불자라고 할 수 있으며, 한국은 불교 유산이 풍부하고 전통이 생활에 배어있는 만큼 불교 국가로 불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초기 불교의 생성 과정과 부처의 행적 등을 전공해 세계적인 석학으로 꼽히는 그는 이날부터 17일까지 머물면서 동국대학교에서 '불교의 문화'(Buddhist Source & Culture)라는 주제로 하루 3시간씩 10차례 하는 여름학기 강의를 시작했다.

이번이 3번째 한국 방문인 그는 앞서 1992년 첫 방문 때는 청도 운문사와 불국사를 다녀갔고 2004년에는 3주간 머물면서 해인사와 백련암 등 여러 사찰을 두루 둘러봤다.

중앙승가대 교수인 미산 스님과 동국대와 승가대에서 강의하는 정덕 스님, 황순일 동국대 교수 등이 그의 제자다. 2001년 작고한 그의 부친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32개국 국어로 번역돼 600만부가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서양미술사'(The Story of Art)의 저자다.

그는 "매사에 초연해야 한다는 부처의 가르침과 부처의 가르침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는 교훈이 상충해 갈등을 겪었다"고 자신의 체험을 소개한 다음 "어떤 일이든 깊게 집착(involved)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지켜가는 것이 불교의 생활 자세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의 핵심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생명이 있는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Loving giving all human beings)"이라고 요약했다.

또 최근 불교계가 지적한 일련의 종교 편향 사건에 대해서는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달라이 라마는 제각각 가진 종교를 존중하라고 가르쳤고 실천했다. 그런 면에서 달라이 라마야 말로 불교 근본주의자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개 종교는 선교에서 공격적으로 임하라(be aggressive)고 가르치나 불교는 공격적이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훈을 감안해야 한다"며 "(그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지금까지 존속하는 게 신기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가 한국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을 거론하자 그는 "인터넷의 유투브를 통하면 다 볼 수 있다"고 언급하며 정치적 논란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했다.

최근 한국 사회의 논란인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매우 복잡하게 얽힌 이슈로 아는 게 없다"며 언급하길 거듭 사양하다가 "영국도 이라크 전쟁에 군대를 보내라는 미국의 압력에 결국 굴복했다"고 돌려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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